양자역학
1. 행렬역학과 파동역학
이전에 발생했던 모순들
빛은 입자/파동 이중성
전자는 입자/파동 이중성
빛의 에너지는 띄엄띄엄(퀀텀) -> 양자역학 이름이 나옴
원자의 에너지도 띄엄띄엄(보어의 이론)
원자의 상태는 불연속으로 바뀐다(보어)
-> 이것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통합적인 이론 필요
양자역학이 탄생하기 직전에 있었던 마지막 이론적 발견은 보어의 원자모형
전자의 궤도들이 반드시 띄엄띄엄한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것 특정한 반지름을 갖는 그런 궤도에만 전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어의 아이디어.
이렇게 띄엄띄엄한 궤도에만 전자가 존재한다면 그 사이에는 전자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 사라져서 다른 장소에 나타나야 한다. (양자도약)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양자역학을 만들었다.
고전역학에서 갈릴레오가 운동에 대한 중요한 이론 가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수식으로 쓴 사람이 뉴턴.
양자역학에서는 보어가 생각해낸 가정,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수식으로 양자역학을 구축해낸 사람이 하이젠베르크. 양자역학의 뉴턴이라고 부를 수 있음
1925년 논문이 양자역학을 완성시키는 첫 번째 단서를 제공.
이 논문이 갖고 있는 의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제목은 “양자 이론적인 역학적인 관계식들에 대한 재해석”. 이 다음에 나올 것들에만 의존하여, 기반하여 원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그런 양들 사이의 관계에만 의존.
정리 – 이 논문은 결국 원리적으로 원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양들의 관계에만 의존해서 양자역학을 만들겠다. 이런 이야기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 observable 측정가능한.
이 이론이 만들어지던 당시 전자나 원자를 직접 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전자의 궤도를 이야기할까 하는 것이 하이젠베르크의 지적. 모든 것들은 다 원자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자를 보는 것인가? 원자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원자에 맞아서 튕겨나온 빛을 보는 것이다. 즉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원자를 이루고 있는 부속품을 직접적으로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원자가 받아서 내뿜는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결국 원자가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빛의 에너지만 가지고서 빛의 세기만 가지고서 구축된 그런 형태를 가진다. 기본 전제는 보어의 모형이다. 원자는 띄엄띄엄한 에너지 상태를 갖고 있고, 이 띄엄띄엄한 에너지상태를 넘나드는 전자가 밖으로 내보내는 빛, 어떤 특정 에너지의 빛이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두 개의 숫자(1번 상태, 2번 상태)로 주어진 연결된 두 상태의 에너지 차 만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두 개의 상태 각각을 지정하는 하나의 숫자들 ex 1번 상태, 2번상태 .. 이렇게 두 개의 숫자의 쌍으로 기술된 숫자들의 집합이 결국 우리가 얻게 되는 최종 산물이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숫자의 행렬이 원자이다.
가로와 세로는 각각 어떤 한 상태를 나타내고, 두 개의 상태가 정해지면 예들들어 세 번째 열의 두 번째 행에 있는 숫자는 세 번째에서 두 번째 상태로 갈 때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이 같이 원자가 흡수 방출하는 빛의 에너지들, 불연속적인 상태를 넘나들면서 내뿜는 에너지들의 숫자를 이차원으로 배열한 이와 같은 이차원 배열, 행렬만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이 행렬을 가지고 원자들의 모든 상태를 기술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이것이 원자의 이론이다. 그래서 하이젠 베르크가 만든 이 역학을 행렬역학이라고 부른다. 즉 원자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행렬의 수학적 형태로 구축된 것 결과적으로 잘맞음, 단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직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
하이젠베르크 행렬역학 방정식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을 수학식으로 쓴 것이다.
H는 행렬, 프사이 라고 쓴 그리스 문자는 원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함수인데 수학적으로는 벡터가 된다.
드브로이의 물질파(1924)
모든 양자역학적인 괴상함은 전자가 파동이기 때문이다. 만약 전자가 파동이라면 전자의 파동을 설명할 수 있는 파동 방정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방정식이 올바르다면 방정식을 풀어서 이미 원자에 대해 알고 있는 에너지들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에르빈 슈뢰딩거
파동방정식 만들었다. 전자의 파동을 기술하는 방정식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본인의 묘비에도 적혀있음.
1926년 물리학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두 개의 종류의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두 종류의 이론을 갖게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형태,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
하나는 관측가능한 것만 가지고 원자를 기술해야 한다. 그래서 이차원의 숫자배열인 행렬이 원자다.
다른 하나는 전자는 파동이다. 그 방정식은 이것이다라고 주장한 이론
이 두 가지는 원자에 대해 똑같은 답을 주기 때문에 어떤 이론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문제
2. 확률과 불확정성 원리
이중 슬릿 실험 – 전자
전자는 분명 입자이다. 단단한 공 같은 것이라는 의미.
두 개의 구멍을 통해 보내면 두 개의 줄무늬가 나와야 하지만 실험해보면 여러 개의 줄무늬가 나온다.
그 과정을 면밀히 보면 점이 하나씩 찍혀가면서 점들의 집합이 여러 개의 줄무늬를 만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하나의 점이 찍힌 사건만 보면 전자는 입자인 것이 분명하다.
전자가 파동이라는 뜻은 여러 개의 전자가 모여서 그들이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패턴이 파동과 같다는 뜻이다.
충분히 많은 수의 전자를 쏘지 않는 한 패턴은 보이지 않는다.
몇 개를 했을 때는 패턴이 보이지 않지만, 여러 개를 보냈을 때 어떤 패턴을 보이는 그런 현상 -> 확률
개별 사건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여러 번의 사건에서 보이는 그런 것이 확률의 중요한 특성이다.
따라서 여기 나온 전자의 간섭무늬는 하나의 전자 입장에서 전자가 가서 놓이게 될 확률 분포를 나타낸다고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확률을 기술하게 되고 이런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바로 막스 보른이다.
막스 보른의 이론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확률을 기술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큰 문제이다.
원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함수(프사이)의 절댓값 제곱이 확률을 나타낸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확률적 측면을 거부하는 말.
아인슈타인이 보른의 아이디어를 듣고 했던 말.
양자역학을 기술하기 위해서 확률을 도입하겠다는 말은 뉴턴 역학이 가지고 있던 결정론을 버리겠다는 말과 같다.
이제부터는 무지를 인정하겠다. 일종의 불가지론이 되겠다는 의미이다. 그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거부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확률을 쓴다는 이야기는 무언가 모른다는 것.
왜 모르는가? 무엇을 모르는가? 뉴턴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체의 위치와 속도이다.
위치와 속도를 알면 그 다음 순간의 위치와 속도를 결정해주는 방정식이 F=ma 라는 식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왜? 본다는 것은 물체에 맞고 튕겨나온 빛을 보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가정이 있다. 이 빛이 물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대게는 이 가정이 맞다. 하지만 전자나 원자와 같은 미시 세계의 대상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 빛도 입자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빛이 전자에 맞으면 전자를 튕겨낸다 그래서 전자 같은 것은 빛으로 볼 때 흔들린다는 것이다.
즉 하이젠 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대상을 관측한다는 것은 대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대상에 영향을 주는 관측은 대상에 대해 정확하게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불확실하다는 뜻이다.
그 불확실한 것이 뉴턴역학에서 꼭 알아야하는 위치와 속도 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불확정성원리는 왜 우리가 양자역학에서 확률을 도입해야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양자역학의 가장 깊은 근본에는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있었던 것이다.
이직제 아 해결되지 않은 행렬역학, 파동역학, 하이젠베르크가 얘기한 양자역학의 해석 이것들을 통합하는 체계가 필요해짐
3. 코펜하겐 해석
양자역학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모순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행렬역학, 파동역학, 보어 양자도약, 확률에 대한 이야기, 불확정성원리 등등이 나왔음.
문제 - 전자가 파동같이 행동해서 간섭무늬를 만드는 것이 그냥 파동이라고 하면 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 -> 간섭무늬를 확률로 해석하기 위해 불확정성 원리가 나왔음. -> 정말 전자가 파동일 수 있을까? -> 파동은 어떤 특정한 위치를 갖지 않고 동시에 여러곳에 존재할 수 있다. -> 따라서 두 개의 구멍을 지날 때,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난다. -> 두 개의 구멍을 중심으로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 내고 두 파동이 서로 간섭해야한다. -> 전자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전자 입장에서 날아가서 구멍 두 개를 동시에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자신과 간섭해야 한다.
코펜하겐 해석
이중 슬릿실험에서 전자를 관측할 때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처럼 행동하는 것을 관측했다.
“관측이 대상에 영향을 준다”는 불확정성 원리의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 전자는 파동의 형태로 진행을 한다. 그러다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난다. 그리고 측정을 한다. 그러자 이제 전자는 한쪽만 지나는 파동으로 바뀌게 된 것.
어느 곳을 지났는지를 물어보는 관측이 어느 한쪽으로만 지나도록 전자의 상태를 바꾼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이젠 베르크가 얘기했던 관측이 대상을 바꾼다는 개념의 틀에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관측이 대상을 바꾼다는 것을 기반으로 양자역학을 이해하려는 이런 것을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르는데, 보어는 덴마크 사람이고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나온 도시의 이름을 따서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른다.
핵심은 바로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아주 생각지도 못했던 답, 본다는 것이 대상을 바꾼다는 것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제 양자역학은 크게 두 파트로 구성이 된다.
전자가 파동성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는 파트 그 파트는 행렬역학이나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막상 관측이 일어나면 상태가 바뀌어서 특정한 어떤 하나의 상태만을 보여주게 된다. 이것이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
Julian Voss-Andreae 의 Quantum Man(양자인간)
관측에 따라 대상이 달라 보인다는 양자역학의 핵심원리를 예술품으로 구현한 것.
솔베이 회의(1927)
양자역학은 먼저 수학적 구조가 완결되고 그 구조가 갖는 뜻이 무엇인지를 나중에 해석으로 얻게 된다. 코펜하겐 해석을 과연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놓고서 회의가 열림
이 회의를 통해서 양자역학은 완벽한 틀을 갖추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질문 - 우리가 보지 않으면 달은 없는 것일까?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뜨기 전까지는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뜨니까 오른쪽 구멍에 있었다. 눈을 뜨기 직전에 전자는 어디에 있었을까? 눈을 뜨기 전에 어느 특별한 장소를 점할 수 없기 때문에 “모른다”라는 대답이 양자역학적으로 옳은 답이다. 그렇다면 달을 보지 않았을 때, 달은 어디있는가? 라는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을 해야하는것인가?
문제는 양자역학이 본다는 행위에 너무 중요성을 두다 보니 과연 보는 것이 결국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하는 괴상한 질문까지 하게 되고 더 나아가 유진 위그너라는 물리학자는 도대체 양자역학은 본다는 행위를 하는 주체, 즉 의식을 가진 인간을 가정하는 것 같은데 내가 보아야 존재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보어의 답
문제는 양자역학,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있다. 우리 언어가 문제이다.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난다는 것을 표현할 언어가 우리에게 없다.
그런 개념이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지 우주가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문제는 인간에게 있지 우주에 있지 않다.
모순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불교나 동양철학, 도교에서 이야기 했을 뿐이지 양자역학의 중요한 개념과 유사할 뿐이지 그 자체가 과학은 아니다.
양자역학은 혼란 끝에,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이라는 두 개의 수학적 형태와 두 개의 수학은 사실 같다는 것이 밝혀짐.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은 코펜하겐 해석으로 정립됨 하지만 아직도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4.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누가 죽였나?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에 대한 이야기. 양자역학이 갖고 있었던 역설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안풀렸던 문제 중 하나.
코펜하겐 해석으로 양자역학은 이해가 되는데, 코펜하겐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측정, 관측, 본다는 것” 이다. 그런데 이 본다는 것에 대해서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측정 문제에는 아주 중요한 모순이 있다. 측정을 하기 위해서는 측정을 당하는 대상과 측정을 하는 주체가 필요한데 주체와 대상은 언제나 나누어야 하는데 양자역학에서는 이 측정 당하는 대상이 원자와 같은 미시세계이고 측정 주체는 사람 거시세계이다.
그래서 거시 세계에서는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나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런 일은 미시 세계에서만 벌어지고 일단 측정을 하게 되면 측정 전에 이상하게 행동하던 미시 세계의 것들이 반드시 거시 세계인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경우의 수가 여러 가지 있을 때는 여러 가지에 대한 확률을 양자역학이 기술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객체와 주체의 이분법이 양자역학 안에는 숨어있는데, 문제는 그 이분법이 과연 타당한가,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보통 거시세계를 나타날 때 물리학에서는 고양이를 사용.
거시 세계라는 것은 양자역학이 아니라 고전역학으로 기술되는 세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고양이도 원자로 되어있다.
즉 우리의 거시세계는 다 원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나는 괴상한 짓을 할 수 있지만 왜 이렇게 많이 모이면 그런 행동을 못할까? 하는 것이 코펜하겐 해석의 문제점 중 하나이다.
어디가 거시 세계와 미시세계의 경계인지를 알 수 없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
박스 안에 독극물이 있다. 그 아래 방사능이있는데 이것을 양자역학적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두 개의 상태를 가질 수 있다. A상태 B상태, A상태에 있던 원자가 B상태로 바뀌면 빛이 나온다.
빛이 나오면 그 빛을 검출기가 빛을 검출하고, 빛을 받으면 아래에 있는 독극물 병을 깨뜨리는게 시스템이다.
만약 원자가 A상태에 있다면 빛이 나오지 않았을 것, 따라서 병은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가 B로 상태를 바꾸면 빛이 나오면서 병이깨지게 된다. 병이 깨지면 고양이는 죽었을 것이니까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둘 중하나의 상태를 갖게 된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날 수 있듯이 원자가 A와 B 두 개 상태에 동시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
동시에 AB에 있으면 빛은 동시에 나왔고 안나왔고, 따라서 검출기는 동시에 빛을 검출 했을 수도 안했을 수도 있고, 독극물 병은 깨졌고 안깨졌고, 고양이는 동시에 죽었고 안죽었고가 된다.
거시세계는 절대로 양자역학 같이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날 수 없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동시에 살아있고 죽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게 되면 양자역학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역설은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를 연결 시킨 것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모순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
안톤 자일링거 실험
그의 실험에 따르면 C60라는 탄소 60개가 모여 있는 거대 분자(고양이)를 사용함.
이걸 던졌는데 간섭무늬가 나왔다. 즉, 고양이로 간섭무늬를 본 것과 같다.
이 후에 점점 더 큰 분자로 실험하게 되고 C70도 가능.
C60F48, Porphyrin등도 모두 간섭무늬가 나왔다.
이 실험을 한사람들의 목표는 아메바가 최종 목표인데, 인슐린같은 거대 분자가 1차 목표가 됨. 그러나 이 이상의 실험은 없었다.
어쨌든 이 정도 거대분자로도 간섭무늬가 나온다는 뜻은 이것들이 양자역학적으로 행동했다는 의미.
이 실험을 통해 단서를 얻게 됨.
이 C60분자가 날아가는 동안 진공이 되어야 한다.
즉 공기 분자와 부딪히면 안된다. 공기 분자 한 개하고의 충돌이 눈을 뜨고 관측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줌.
관측이 무엇인지 즉 관측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중요한 답을 준다.
공기 분자 하나라도 부딪히면 간섭무늬가 사라진다는 얘기는 공기분자조차 관측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로부터 오늘날의 물리학자는 관측에 대한 새로운 틀, 개념을 만들어 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측이라는 것은 훨씬 더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와 같은 관측을 Decoherence(결어긋남)이라고 부른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측은 인간 관측자, 의식을 가진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우주 전체가 관측의 주체라는 것이다.
다시 아인슈타인의 질문
내가 보지 않는 다면 달은 그곳에 있는 것인가? 달은 있다.
내가 보지 않아도, 태양 빛이 달에 부딪히는 순간 달은 측정이 된 것, 친구가 보아도 된 것. 우주에서 단 하나의 분자라도 달과 부딪히면 달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이 갖고 있었던 문제, 관측의 주체는 누구이며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경계는 어디인가에 대한 답이 결어긋남이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주어지게 된다.
그래서 코펜하겐 해석을 더욱 튼튼하게 해줌.
다시 슈뢰딩거 고양이에 대한 해석
동시에 살아있고 죽어있는 고양이는 가능한가? 안톤 자일링거의 답은 그렇다이다.
단, 고양이가 절대로 측정을 당하지 않는 조건하에서만 그렇다.
완벽한 암흑, 완벽한 진공, 몸에서 원자가 하나라도 떨어지면 안된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양자역학적 행동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원자와 전자가 양자역학적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들이 관측을 당하지 않기 쉬웠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본인을 격리한 것 슈뢰딩거 고양이는 가능하지만 그렇게 만들기가 너무 힘들어서 안되는 것이지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
정리
양자역학이 마주했던 모순 -> 이중성 문제 -> 두 개의 이론 (행렬역학, 파동역학)
1. 행렬역학과 파동역학
2. 확률과 불확정성원리
물체의 속도와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미래에 대해서 모르게 된다. 미래르 완전히 모른다면 물리학이 불가지론이 되겠지만, 모르는 것에 어느정도 한계가 있게 되고 그 한계까 얼마인지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 불확정성 원리이다. 그 한계 내에서는 예측 가능하고 그 예측 가능한 정도는 오로지 확률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중요한 개념.
3. 코펜하겐 해석
4.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누가 죽였나?
경희대학교 모두를 위한 물리학 -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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